이성재 나이 키 고향 가족 영화 자녀 프로필 수입
배우 이성재 프로필
1970년 8월 23일
나이: 51세
고향: 서울특별시 용산구
키: 180cm
가족: 아버지 이강태, 형 이원재
자녀: 장녀 이인영, 차녀 이채영
배우자: 아내 김진숙
학력: 상명초등학교, 한강중학교, 오산고등학교,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소속사: 쿰엔터테인먼트
1995년 MBC 공채 탤런트 출신 배우로 대표작으로는 미술관 옆 동물원, 주유소 습격사건, 플란다스의 개, 공공의 적 등이 있습니다.
이성재의 아버지는 과거 삼성종합건설(현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을 역임한 기업인 이강태 씨로 2014년 1월 29일, 구정 직전에 루게릭병으로 별세하셨습니다.
형 이원재는 육사 출신의 현역 육군 대령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이성재가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건 1998년 방영한 드라마 거짓말을 통해서였는데, 당시 한석규, 박신양에 뒤 이을 멜로 배우의 등장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 분위기나 연기패턴이 한석규와 비슷해 '제2의 한석규'라는 타이틀을 얻기도합니다.이성재는 1998년에는 미술관 옆 동물원으로 각종 영화제의 신인상을 모두 휩쓸며 이후 자귀모, 주유소 습격사건, 플란다스의 개, 신라의 달밤 등에 출연헤 충무로에서 조금씩 자기 입지를 굳히기 시작합니다
그중에도 이성재라는 이름 석자가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작품으로 2002년에 출연하여 지금까지도 대사들이 회자되는 영화가 공공의 적이다.
여기서 잔인한 사이코 패륜아 아들 역을 맡아 소름끼치는 연기를 보여줬는데 악역을 너무 실감나게 해서 영화 개봉 후 CF가 끊겼다는 얘기가 있을정도다
또한 멜로 영화와 드라마 제의는 아예 들어오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공공의 적이 그의 커리어에 연기력을 입증해주는 작품임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이성재는 2004년에 개봉한 신석기 블루스때 이 영화의 콘셉트가 추남 신석기라는 이유로 추남 분장으로 주연을 맡았는데 그게 너무 심해서 관객들이 거부감을 보이며 안 좋게 입소문을 타며 흥행 참패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연이어 출연하는 영화들도 흥행성과 작품성에서 모두 고배를 마시게 되어 결국엔 에로영화까지 출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두사부일체의 속편이라고 할수있는 상사부일체에 출연할 때부터 이성재가 영화판에서 완전히 추락했다는 반응도 들리기 시작합니다.
이유로는 이성재 본인 역시 그 이후 연이어 출연한 드라마들의 시청률이 한 자릿수에 머물면서 2012년까지 드라마판에서도 성적이 영 좋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성재는 2013년 MBC 나 혼자 산다에 고정으로 출연해 아내와 두 딸을 모두 외국에 내보내고 혼자 지내고 있는 기러기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혼자 원룸을 얻어서 애완견 베들링턴 테리어 '에페'와 조금은 궁상맞게 사는 모습이 방영돼 화제가 됐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이성재는 딸밖에 모르는 딸바보 아빠로 알려져있는데, 딸이 원한다면 좋아하는 연예인의 싸인과 인터뷰도 직접 받아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평소 두 딸들은 샤이니와 B1A4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이성재는 샤이니 멤버들의 이름을 티랑 커피로 알고 있고, B1A4는 복사용지로 알고 있는 웃지못할 일이 있기도합니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학과 졸업자로 빠른 1971년생인 고현정과는 동기로 알려져있습니다.
이성재는 영화 올드보이에 유지태가 연기한 이우진 역할을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로는 스케줄 때문이라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딸을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 도저히 배역을 맡을 자신이 없기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성재는 동갑내기인 박명수의 라디오쇼에 출연해 박명수에게 할아버지가 된 소감을 묻는 질문을 받았는데요
작년에 첫 손자를 봤다, 그리고 2주 전에 손녀를 봤다며 특별하게 새롭거나 그런건 없다. 그냥 자식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수입에 대해서 물어도 보았는데 이에 대해 이성재는 이번달 11월은 0원이라고 밝혔는데요
배우라는 것이 작품을 할 때 목돈이 들어오고, 매달 활동하는 것이 아니기에 수입이 0원일 때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작품을 하지 않을땐 그동안 쌓아놓은 걸 야금야금 빼먹는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지금까지 가족들에게 10년동안 한번도 생활비를 밀린적이 없다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했습니다